유다 스펠라 구릉의 변경 요새로 엘라 골짜기를 지켰으며, 예루살렘 함락 직전까지 버틴 성읍.
성경에 처음 등장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주시키시자, 이스라엘이 기브온에서 크게 무찌르고 벳호론 오르막을 따라 아세가와 막게다에 이르기까지 추격하며 쳤다.— 여호수아 10:10
배경 소개
아세가는 베들레헴 서쪽 약 25km, 예루살렘 남서쪽 약 30km에 있으며, 스펠라 구릉의 골짜기에서 약 120m 솟은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오늘날 텔 자카리야(텔 아세카)가 그 유적이다. 엘라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해안 평원에서 유다 산지로 이어지는 주요 길목을 지키는 요충지로, 기원전 13세기 이전부터 성벽을 갖춘 큰 성읍이었다. 여호수아가 남방 아모리 연합군을 무찔 때 기브온에서 벳호론 내리막을 따라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추격했고, 적이 도망하는 동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아세가까지' 큰 우박을 쏟으셔서 칼에 죽은 사람보다 우박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여호수아 10:10, 11). 땅을 분배할 때 아세가는 유다 지파에 속했고(여호수아 15:35), 소년 다윗이 블레셋 거인 골리앗과 맞선 곳이 '소고와 아세가 사이' 엘라 골짜기였다(사무엘상 17:1). 르호보암 왕이 이 성읍을 열다섯 개의 견고한 성읍 가운데 하나로 요새화했고(역대하 11:9), 앗시리아 왕 산헤립은 《아세가 비문》에서 이 성읍이 '산능선 위에 있고 성벽이 가장 높은 산과 맞먹는다'고 자랑하면서 공격 축대와 공성퇴로 함락시켰다. 느부갓네살 때 라기스와 아세가는 예루살렘 함락 전 마지막까지 버틴 견고한 성읍이었고(예레미야 34:7), 《라기스 서신》에서 '아세가의 신호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가 그 마지막 순간을 전한다. 포로에서 돌아온 뒤 사람들은 다시 아세카에 살았다(느헤미야 11:30).
관련 성구 (신세계역)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벳호론 내리막으로 도망하는 동안, 여호와께서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하늘에서 큰 우박을 쏟으셨다. 우박에 죽은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이 칼로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 여호수아 10:11
바빌론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에 남은 모든 성읍을 치고 있었는데, 유다의 견고한 성읍은 라기스와 아세가만 남아 있었다.— 예레미야 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