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여지도

킬리기아

Cilicia · 현재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아다나, 메르신 일대), 추쿠로바(Çukurova) 평원. 바울의 출생지 타르수스가 이 지역의 주요 도시였다.
소아시아 남부 지중해 연안 지방으로, 주요 도시 타르수스는 바울의 출생지였다. 로마 시대에는 속주가 되었다. 회심 후 바울은 시리아와 길리기아에서 전파하며 회중들을 강하게 해 주었고, 로마로 가는 길에는 이 해안을 따라 항해하였다.
성경에 처음 등장
이른바 ‘자유민의 회당’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 그리고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하였다.— 사도행전 6:9
배경 소개
길리기아는 소아시아 남부, 지중해와 토로스산맥 사이에 펼쳐진 비옥한 평원으로, 현재 터키의 추쿠로바 평원(아다나와 메르신 일대)에 해당한다. 주요 도시인 타르수스는 사도 바울의 출생지였다. 이곳에는 일찍부터 유대인들이 정착해 살았으며, 예루살렘의 ‘자유민의 회당’에도 길리기아 출신 유대인들이 있어 스테파노와 논쟁하였다(사도행전 6:9). 회심 후 바울은 타르수스 근방에서 여러 해를 보내며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서 활동하였다(갈라디아서 1:21). 예루살렘 회의 후 사도들과 장로들의 편지는 “안티오크와 시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 형제들”에게 전해졌고(사도행전 15:23), 바울은 두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할 때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두루 다니며 회중들을 강하게 해 주었다”(사도행전 15:41).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을 때 바울은 자신이 “길리기아의 타르수스” 출신 유대인임을 밝혔고(사도행전 21:39; 22:3), 총독 펠릭스는 편지를 읽은 뒤 그가 길리기아 출신인 것을 알고 사건을 접수하였다(사도행전 23:34). 로마로 호송될 때 배는 “길리기아와 팜필리아 앞바다”를 건너 루키아의 미라에서 다른 배로 갈아탔다(사도행전 27:5). 정치적으로 길리기아는 기원전 1세기 중엽 로마 속주가 되었으며, 동부 산악 지대는 속주 왕들의 통치를 거쳐 서기 72년에 완전히 속주로 편입되었다.
관련 성구 (신세계역)
이른바 ‘자유민의 회당’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 그리고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하였다.— 사도행전 6:9
그들은 이런 편지를 써서 그 편을 통해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장로들이 안티오크와 시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사도행전 15:23
그는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두루 다니며 회중들을 강하게 해 주었다.— 사도행전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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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랙티브 성경 지도를 여는 중…